독서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대개 숫자를 궁금해합니다.
한 달에 몇 권을 읽는지, 1년에 몇 권을 완독하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그 질문에 자연스럽게 권수로 답하곤 했습니다.
많이 읽을수록 뿌듯했고, 그 숫자가 곧 제 독서의 성실함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숫자가 중요한 걸까.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보다, 그 책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강사님은 책을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지금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런식으로 답하는 편입니다.
“몇 권을 읽었는지보다, 내가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자주 멈췄는지가 중요해요.”
“1년에 100권을 읽는 것보다, 1년에 한 권이라도 깊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요.”
많이 읽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집니다.
하지만 어느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던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그 문장이 왜 마음에 걸렸는지,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책을 덮고도 한동안 그 문장을 떠올렸던 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독서의 진짜 흔적은 읽은 책의 권수가 아니라,
그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멈춰 섰는가에 남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독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에 지극히 공감합니다.
어려운 책을 억지로 붙잡고 있어야 하고,
읽히지 않는 문장 앞에서 계속 버텨야 하며,
책을 펴는 순간마다 잡념이 먼저 찾아온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게 맞지 않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편식 없이 골고루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도 읽고,
인문서도 읽고,
어려운 고전에도 도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편식은 하지 않더라도, 편독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고가 넓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독서가 숙제가 되고,
책 자체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재미있는 책,
나에게 필요한 책,
읽다 보면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책.
독서는 그런 책에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결국 좋은 독서 습관은
얼마나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느냐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책과 함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분야,
내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주제를 먼저 찾는 것.
그렇게 재미를 느끼며 쌓아간 독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다음 책으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다른 분야의 책으로까지 나를 데려갑니다.
억지로 시야를 넓히려고 애쓰기보다
좋아하는 것부터 깊이 파고드는 것.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독서의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보다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그 책의 제목과 저자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 한 권의 독서는 이미 충분히 좋은 독서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