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촉 >2부 '고독과 매혹'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면, 그 사랑의 시간도 끝나는 걸까?”
2부에서는 지금은 나이 든 자매 안나와 경선의 젊은 시절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갑니다.
안나는 안나푸르나 여행에서 한 남자를 만나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혼자 살아온 안나에게도 누군가에게 매혹되고, 평소와 다른 자신을 발견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경선에게는 P가 있었습니다.
사랑했고 결혼했고 함께 살았습니다.
하지만 관계는 변했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1부에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P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요.
그래서 2부의 젊은 P를 만나는 마음이
끝을 알고 시작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애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기억은 순서대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다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르고, 장례식장을 생각하다가 함께 밥 먹으며 웃었던 날이 떠오르고, 서운했던 일이 생각나다가 문득 고마웠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사람은 떠났는데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은 자꾸 현재로 돌아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고독하지 않게 되는 걸까요?
안나와 경선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 살아도 반드시 고립된 것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고독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각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존재이기에 고독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매혹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부 「몸의 사건들」에서 늙고 병들고 변해가는 몸을 만났다면, 2부에서는 그 몸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나이 든 한 사람에게도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했던 시간이 있고,
선택했던 시간이 있고,
헤어진 시간이 있고,
아직 누구에게도 다 말하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인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의 주름진 얼굴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한 사람 안에 겹겹이 쌓인 시간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계는 끝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간은 기억 속에서 다시 나타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며
오늘의 나를 다시 만들어갑니다.
질문 하나를 남겨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끝났지만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는 관계는 누구인가요?”
그 분과 가진 시간은 나에게 어떤 감촉으로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