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클 36기에서 소설 <달팽이 식당>을 읽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링고인데요, 그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도 깊이 상처받아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아픔'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링고의 상처를 알아 볼까요
첫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입니다.
함께 살던 연인은 어느 날 돈과 가구, 살림살이와 요리 도구까지 모두 가지고 사라집니다.
사랑뿐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활과 미래까지 한꺼번에 빼앗긴 링고는 충격으로 목소리를 잃습니다.
이런 충격은 우리에게도 있지요,
말을 잃었다는 것은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을 넘어선다는 것도 알지요.
“나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말할 수 없다.”
“내가 믿었던 관계와 세계가 무너졌다.”
라는 마음 상태가 몸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둘째, 어머니에게서 받은 오래된 상처입니다.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어머니(루리코)와 링고는 오랫동안 갈등합니다.
15살 무렵 고향집을 떠나 도쿄의 할머니에게 가서 살 정도로 어머니와의 관계가 불편했습니다.
링고에게 어머니는 편안하게 기대고 싶은 존재이면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링고의 내면에는 연인에게 버림받기 전부터 이미
“나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라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할머니를 잃은 상처입니다.
할머니는 링고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고 따뜻하게 돌 본 분입니다.
연인이 모든 것을 가져간 뒤에도 링고에게 남은 것은
할머니와의 기억이 담긴 누룩절임 항아리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주방용품이 아니라,
‘나는 한때 사랑받았던 사람’이라는 기억의 증거물이었습니다.
링고는 어떻게 사람들을 치유했을까요?
링고는 자신이 가진 상처와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합니다.
자신은 갑작스럽게 버림받았지만, 손님에게는 온전히 머물러 줍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손님의 사연은 충분히 듣습니다.
자신은 목소리를 잃었지만, 음식을 통해 마음을 표현합니다.
달팽이 식당은 하루에 한 팀만 받고 정해진 메뉴도 없습니다.
링고는 손님과 미리 필담으로 사전 조사를 합니다.
그 사람의 사연과 취향, 바람을 알아본 뒤 오직 그 사람을 위한 음식을 만듭니다.
음식만드는 과정을 한번 들여다 볼까요
사연을 듣습니다.
→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합니다.
→ 그 사람만을 위한 음식을 만듭니다.
→ 음식의 맛과 향이 몸의 감각과 기억을 깨웁니다.
→ 얼어 있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다시 누군가 만나거나 삶으로 돌아갈 힘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링고는 헤어진 아내와 딸을 기다리는 구마 씨에게 석류 카레를 만들어 줍니다.
또한 남편을 잃은 뒤 오랫동안 상복만 입고 살아가는 할머니에게는
단맛, 매운맛, 신맛과 따뜻함이 어우러진 긴 코스 요리를 준비합니다.
음식이 슬픔을 없애 준다기보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몸과 마음에 다시 삶의 감각을 일깨워 주는 겁니다.
링고의 음식이 특별했던 이유
링고는 손님에게
“잊으세요.”
“힘내세요.”
“좋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사람의 아픔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사람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였습니다.
손님은 음식을 통해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위해 이만큼의 시간을 사용했구나.”
“나는 여전히 귀하게 대접받을 사람이다.”
라는 경험이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합니다.
사람들을 치유하면서 자신도 치유됩니다
식당을 시작할 때 링고는 버림받고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손님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불편했던 어머니를 조금씩 이해하며,
어머니가 남긴 마음과 사랑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편지를 통과한 뒤 링고는 다시 식당의 주방에 서게 됩니다.
<달팽이 식당>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링고가 손님을 먹이면서 손님이 살아갈 힘을 얻고,
손님들이 링고의 음식을 먹어 줌으로써 링고도 자신의 존재와 삶을 회복합니다.
<달팽이 식당>을 읽고 이렇게 적어 봅니다.
“링고는 말을 잃었지만, 한 사람을 위한 음식을 만들며 다시 세상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치유는 상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삶의 맛을 느끼는 과정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언젠가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작별한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을 소중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후회없도록 말이죠.
때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의 요동치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알아주는 용기
다시 관계를 회복하리라 다짐하는 용기
그 사람에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용기
또 상처입을 용기 말이죠
나에게 주는 용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