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하루클 33기에서 최유나 작가의 『마일리지 아워』를 읽고 있는데요,
슈필라움(Spielraum)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닿아 알아보았어요.
슈필라움(Spielraum).
독일어로 '놀이 공간'이라는 뜻이에요. 노는 공간이 아니라,
규칙과 제약 사이에서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틈, 혹은 여백을 말이죠.
철학에서는 존재가 숨 쉬는 열린 장(場)으로,
음악에서는 악보와 연주 사이의 해석의 자유로,
일상에서는 빡빡한 현실 속에서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재량의 폭으로 쓰이는 말이에요.
분야는 달라도 핵심은 같아요. 정해진 것들 사이에서, 그래도 내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자리.
바꾸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황이 선순환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주어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내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니까요.
살다 보면 분명 바꾸기 어려운 환경이 있잖아요.
사람도 쉽게 바꿀 수 없고, 해야 할 일도 당장 멈출 수 없고,
책임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계속 나를 부르고요.
그럴 때 처음에는 자꾸 바깥을 바꾸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어도,
그 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자리는 남아 있다는 걸요.
저는 그 자리가 바로 슈필라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나를 완전히 잃지 않게 해주는 조용한 틈.
나에게 슈필라움은 어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며 디카시 쓰기
꽃과 나무들과 인사하고 하늘을 보며 미소지으며 걷기
혼자 즐기는 사우나
글밥과 그림을 느끼며 그림책 읽기
우연히 들린 중고책방에서 찾고 있던 책을 만날 때
혼자만의 영화 보기
모두 느리고 조용하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런데 제 슈필라움은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에만 머물지 않더라고요.
손녀들과 다이소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은 놀잇감을 고르게 하고,
제가 그것을 사 주며 함께 웃는 시간도 저에게는 분명한 슈필라움이에요.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한 장면 앞에서 같이 웃고, 같이 놀라고, 같이 머무는 순간도 그렇고요.
털기춤을 추며 몸과 마음에 쌓인 묵은 긴장을 털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결혼한 자녀들의 안부 인사를 나눌 때, 함께 밥을 먹을 때
가끔 제가 해놓은 반찬이 맛있다고 행복해 하시는 친정엄마의 얼굴을 보며
"오늘은 실수했네요" 하하하 하고 함께 웃을 때
그런 시간에는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웃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슈필라움을 단지 혼자 쉬는 시간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혼자 조용히 숨을 고르는 자리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다시 살아나는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이 조금 풀리고,
내 호흡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막혔던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점이에요.
슈필라움은 멀리 있지 않는 것 같아요.
바꿀 수 없는 삶 한가운데서도, 내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자리.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 안에 있었어요.
어쩌면 삶이란 나의 슈필라움(Spielraum)을 확장해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당신의 슈필라움(Spielraum)은 무엇인가요?